눈 내리는 소리


눈이 내린다. 숲으로 눈이 내리고 있다. 북한산 자락으로 이사 오려고 집을 알아볼 적에 집주인은 눈 오는 날이면 경국사 숲이 아름답다고 자랑했더랬다. 그 말을 들었던 때가 여름이었는데, 과연 경국사 숲이 아름답다. 눈은 계속 내리는데, 이곳에서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리려나?

남도를 여행할 적에, 곡성에서 순천 쪽으로 가던 길에 조그만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거기에 대숲이 깊었다. 때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대숲에 들어가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사락 사락 사라락. 정말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이곳에서도 들릴까?

눈을 맞으며 북한산 숲을 들었다. 대설주의보라 하여 위험하니 국립공원 내 출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긴 이래저래 간섭하는 것이 국립공원의 단점이긴 하지. 발길을 돌렸으나 산으로 드는 길이 어디 그곳 뿐이랴. 동네 사람인 만큼 동네 뒷산의 길로 접어들면 그만이다.

숲은 고요하고 눈은 하염없이 내린다. 그리고 눈 내리는 소리 들린다. 사락 사락. 솔숲에 눈이 내리는 소리인가? 눈이 내리는 산길은 아름답다. 고요한 접촉이 있는 순간은 아름답다. 나무들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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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눈을 맞으며 산행을 해본 적이 그 언제였던가? 많은 날들이 지나갔고, 나는 이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 이 사소한 것들, 그러나 이 성숙한 것들.

똑딱이 디카를 들고 간간히 셔터를 눌러본다. 자동카메라이긴 해도 이리저리 농을 해보니 꽤 그럴싸한 사진이 찍히기도 한다. 모든 것이 거대한 농담인 것을! 인간세 모든 것이 거대한 장난이고, 거대한 미망이고, 거대한 희롱인 것을! 깨닫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온다고 했다던가? 인간세가 터무니없어 웃음이 나오고 깨달음이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니어서 웃음이 나온다고? 아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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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눈이 내리는 순간이면 모든 것이 족하다. 그 이상 아무 것도 없다. 되가져올 과거도 없고 바라볼 미래도 없다. 오직 이 순간만 있고, 그리하여 순간순간 계속 흐를 뿐이다. 순간 순간을 이어 계속 눈이 내리는 것, 그 고요한 소리 끝없이 맑게 들리는 것, . . .


이 글은 2008년 01월 11일에 작성되어 생활잡감(으)로 분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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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소리'에 대한 댓글 4


  1. 이 곳에도 그제 저녁 무렵 부터 큰 눈이 내렸다. 한국에서 보던 눈과 뭐가 다를까? 춥지 않은 날씨 덕에 금방 녹을 줄 알았던 눈이 아직 쌓여 있네. 이 곳 사람들이 ‘미망’이라는 뜻을 알까?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길.

    석영

    2008년 01월 17일

  2. 오랜만일세.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가는 건가?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 . .

    고싱가

    2008년 01월 19일

  3. 이곳도 눈이 푸지게 내렸습니다.
    온 세상을 침몰시킬듯이…….
    눈이 내리는 날은 겨울숲의 나무가 되기보다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운 일임을 알게한
    그 숲에 눈으로 내리고 싶어지지요.

    은사시나무

    2008년 02월 02일

  4. 온 세상을 침몰시킬듯이 내린 눈이라면, 숲은 가히 장관이었겠군요. 눈은 역시 숲의 나무들 위에 내리는 눈이어야 . . .

    고싱가

    2008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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