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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omments on: 오역의 장소들(1) — “새로운 진리를 보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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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산들바람으로,폭풍으로,나비의너울거림으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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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y: 조호영</title>
		<link>http://www.gosinga.net/archives/1128/comment-page-1#comment-425</link>
		<dc:creator>조호영</dc:creator>
		<pubDate>Wed, 30 Nov -0001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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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일단 위에서 오역과 관련하여 지적하신 사항은 특히 니체에게 있어서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닌 아주 중요한 점을 잘 지적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우리 말에 없는 수동태를 능동태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위에서 오역이라 지적하신 것들이 별 문제 없이 받아들여집니다(물론 저는 소설의 번역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니체의 경우는 그의 비유적 표현들로 인해 특히나 조심해야 하는데 다른 분들은 제쳐두고라도 니체 전집 시리즈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번역하신 정동호교수님의 번역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다음으로 니체와 불교의 연관성을 지적하셨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가는군요. 오쇼 역시 니체를 이 부분에서는 오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니체가 불교와 전혀 연관된 사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니체가 불교와 갖는 연관성은 직접적인 연관성이라기 보다는 간접적인 연관성으로 보야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위에서 니체의 신비주의 사상을 언급하셨는데 분명 니체에게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비주의 사상은 사실 불교와 직접 연관된 데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니체 당시, 아니 그 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독일의 분위기를 주도했던 독일 루터파의 경건주의 사상과 신비주의 사상과 연관이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불교적 신비주의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적 신비주의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니체가 기독교를 수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독일의 신비주의적 분위기의 영향을 그가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니체의 사상은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입니다만 사실 그가 사용하는 비유적 표현들은 대개가 성경에서 빌어온 것들임을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니체의 사상을 겉으로 드러나는 유사성으로 인해 불교와 자꾸 연관시키려는 것은 니체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니체를 좀 더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 당시의 독일의 분위기(독일의 경건주의, 신비주의, 낭만주의 등)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오쇼의 차라투스트라]를 사놓고 1년 넘도록 읽지 못하고 있는데 조금은 겁이 나는군요. 혹시 지나치게 불교적 입장에서 니체를 해석해 놓은 것은 아닌지... [차라투스트라] 번역에서 너무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일단 위에서 오역과 관련하여 지적하신 사항은 특히 니체에게 있어서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닌 아주 중요한 점을 잘 지적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우리 말에 없는 수동태를 능동태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위에서 오역이라 지적하신 것들이 별 문제 없이 받아들여집니다(물론 저는 소설의 번역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니체의 경우는 그의 비유적 표현들로 인해 특히나 조심해야 하는데 다른 분들은 제쳐두고라도 니체 전집 시리즈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번역하신 정동호교수님의 번역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br />
   다음으로 니체와 불교의 연관성을 지적하셨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가는군요. 오쇼 역시 니체를 이 부분에서는 오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니체가 불교와 전혀 연관된 사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니체가 불교와 갖는 연관성은 직접적인 연관성이라기 보다는 간접적인 연관성으로 보야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위에서 니체의 신비주의 사상을 언급하셨는데 분명 니체에게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비주의 사상은 사실 불교와 직접 연관된 데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니체 당시, 아니 그 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독일의 분위기를 주도했던 독일 루터파의 경건주의 사상과 신비주의 사상과 연관이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불교적 신비주의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적 신비주의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니체가 기독교를 수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독일의 신비주의적 분위기의 영향을 그가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니체의 사상은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입니다만 사실 그가 사용하는 비유적 표현들은 대개가 성경에서 빌어온 것들임을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니체의 사상을 겉으로 드러나는 유사성으로 인해 불교와 자꾸 연관시키려는 것은 니체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니체를 좀 더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 당시의 독일의 분위기(독일의 경건주의, 신비주의, 낭만주의 등)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br />
   [오쇼의 차라투스트라]를 사놓고 1년 넘도록 읽지 못하고 있는데 조금은 겁이 나는군요. 혹시 지나치게 불교적 입장에서 니체를 해석해 놓은 것은 아닌지&#8230; [차라투스트라] 번역에서 너무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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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y: 고싱가</title>
		<link>http://www.gosinga.net/archives/1128/comment-page-1#comment-426</link>
		<dc:creator>고싱가</dc:creator>
		<pubDate>Wed, 30 Nov -0001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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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조호영님 오랜만이어요, 반갑습니다. 저 역시 님의 의견처럼 니체의 사상이 불교와 직접 연관된 데에서 나왔다고 보지 않습니다. 일단 니체는 불교문헌을 거의 접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니체의 사상을 일부러 불교와 연계시킬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이제까지의 우리가 배운 학문적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고 그 이상의 차원, 가령 불교적 명상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기본입장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대부분의 학자, 아마도 99%의 학자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 외로운 입장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오쇼 라즈니쉬와 칼 구스타프 융이 곁에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가졌지요.

저는 제도권에 들어가 대부분의 학자가 틀렸다는 것을 논증하거나 그들과 논쟁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quot;그들이 니체를 상당히 잘 모른다&quot;는 점을 그들의 오역을 들춰내서 입증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오역 점검을 시작했던 것이지요.

아울러 님께서 언급하신 독일 루터파의 경건주의와 니체는 높이가 다르다고 봅니다. 그리고 루터나 독일 루터파의 사상은 신비주의라고 할 만한 높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물론 이냐시오나 마이스터 엑카르트 정도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싶지만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신비주의 수준으로 인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니체가 독일 경건주의 내지 신비주의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니체가 &#171;즐거운 학문&#187; 292에서 &quot;나는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quot; 하는 엑카르트의 말을 인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니체의 저서들이 엑카르트의 신비주의와 언어적 친밀성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니체는 (카톨릭이든 개신교든) 기독교 전통의 언어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언어로는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조차도 사춘기 수준의 감성이라고 보았고 심지어는 예수조차도 미숙하다고 평했지요. 니체가 기독교 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오히려 패러디이거나 익숙한 의미를 깨뜨리는 의도일 경우가 많은 점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도 니체처럼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이냐시오, 엑카르트, 루터, 본회퍼 등은 현재도 제가 좋아하고 있고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저는 그들의 글을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씩이나마 희랍어, 라틴어, 독일어 원문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 정도로 기독교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다만 우리나라 개신교 수준에 대해서만큼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저의 종교적 성향과 이해력을 내비치는 것은 제가 니체를 억지로 불교에 끼워맞출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조호영님 오랜만이어요, 반갑습니다. 저 역시 님의 의견처럼 니체의 사상이 불교와 직접 연관된 데에서 나왔다고 보지 않습니다. 일단 니체는 불교문헌을 거의 접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니체의 사상을 일부러 불교와 연계시킬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이제까지의 우리가 배운 학문적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고 그 이상의 차원, 가령 불교적 명상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기본입장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대부분의 학자, 아마도 99%의 학자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 외로운 입장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오쇼 라즈니쉬와 칼 구스타프 융이 곁에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가졌지요.</p>
<p>저는 제도권에 들어가 대부분의 학자가 틀렸다는 것을 논증하거나 그들과 논쟁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8220;그들이 니체를 상당히 잘 모른다&#8221;는 점을 그들의 오역을 들춰내서 입증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오역 점검을 시작했던 것이지요.</p>
<p>아울러 님께서 언급하신 독일 루터파의 경건주의와 니체는 높이가 다르다고 봅니다. 그리고 루터나 독일 루터파의 사상은 신비주의라고 할 만한 높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물론 이냐시오나 마이스터 엑카르트 정도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싶지만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신비주의 수준으로 인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니체가 독일 경건주의 내지 신비주의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p>
<p>니체가 &laquo;즐거운 학문&raquo; 292에서 &#8220;나는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8221; 하는 엑카르트의 말을 인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니체의 저서들이 엑카르트의 신비주의와 언어적 친밀성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니체는 (카톨릭이든 개신교든) 기독교 전통의 언어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언어로는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조차도 사춘기 수준의 감성이라고 보았고 심지어는 예수조차도 미숙하다고 평했지요. 니체가 기독교 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오히려 패러디이거나 익숙한 의미를 깨뜨리는 의도일 경우가 많은 점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p>
<p>그렇다고 해서 저도 니체처럼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이냐시오, 엑카르트, 루터, 본회퍼 등은 현재도 제가 좋아하고 있고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저는 그들의 글을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씩이나마 희랍어, 라틴어, 독일어 원문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 정도로 기독교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다만 우리나라 개신교 수준에 대해서만큼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저의 종교적 성향과 이해력을 내비치는 것은 제가 니체를 억지로 불교에 끼워맞출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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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y: 조호영</title>
		<link>http://www.gosinga.net/archives/1128/comment-page-1#comment-427</link>
		<dc:creator>조호영</dc:creator>
		<pubDate>Wed, 30 Nov -0001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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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설명 감사합니다. 제가 독일의 경건주의나 신비주의를 말씀드렸던 것은 니체가 불교보다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영향을 더 받을 것이라는 점과 그의 글쓰기 스타일이 결코 그 자신만의 독창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저 역시 니체가 루터파적 경건주의나 신비주의와 직접 연관이 있다는고는 믿지 않지만 독일의 경건주의나 신비주의가 말씀하신 엨카르트에게서와 같은 종교적 방향으로 흘러간 반면, 또 정반인 비종교적 방향으로도 흘러가서 독일 낭만주의에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니체의 글은 당시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글과 상당히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결국 니체를 불교적 신비주의의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니체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님의 해박한 지식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더불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자극도 받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곳이 님과의 좋은 대화의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설명 감사합니다. 제가 독일의 경건주의나 신비주의를 말씀드렸던 것은 니체가 불교보다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영향을 더 받을 것이라는 점과 그의 글쓰기 스타일이 결코 그 자신만의 독창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저 역시 니체가 루터파적 경건주의나 신비주의와 직접 연관이 있다는고는 믿지 않지만 독일의 경건주의나 신비주의가 말씀하신 엨카르트에게서와 같은 종교적 방향으로 흘러간 반면, 또 정반인 비종교적 방향으로도 흘러가서 독일 낭만주의에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니체의 글은 당시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글과 상당히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결국 니체를 불교적 신비주의의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니체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br />
   글을 읽을 때마다 님의 해박한 지식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더불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자극도 받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곳이 님과의 좋은 대화의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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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y: 고싱가</title>
		<link>http://www.gosinga.net/archives/1128/comment-page-1#comment-428</link>
		<dc:creator>고싱가</dc:creator>
		<pubDate>Wed, 30 Nov -0001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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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예. 조호영 님 말씀대로 니체는 독일 낭만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요. 단적으로, &#171;비극의 탄생&#187;의 주요 사상이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권 아래에서 쓰여졌다는 점을 부인할 학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니체의 초기/중기/후기의 사상적 분위기를 각각 낭만주의/계몽주의/낭만주의로 규정하기도 하지요. 저는 이 규정에서 초기의 낭만주의에는 동의하는데 후기의 낭만주의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독일 낭만주의가 엑카르트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지적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저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엑카르트와 독일 낭만주의는 언어는 비슷해도 그들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고 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후기의 니체와 독일 낭만주의 사이에도 그만한 간격이 있다고 봅니다. &#171;비극의 탄생&#187; 중 [자기비판의 시도] 7절에서 &quot;아니, [니체] 씨, 당신의 책이 낭만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낭만주의입니까?&quot; 하는 질문이 나오지요? 저는 이 대목이 상당히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후기 저서는 그 언어적 형태로 보자면 누구나 낭만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실상 니체는 단호하게 낭만주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신비주의의 문제인데, 사실 제 사고에서는 엑카르트의 신비주의나 불교의 신비주의나 별다르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니체를 불교적 신비주의라고 하든 엑카르트적 신비주의라고 하든 저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어떤 언어적 형태를 취하든 어느 한 정신적 고원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으로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니체의 사상이 신비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도 상관없고, 또 그 판단도 맞다고 봅니다. 다만, 그런 신비주의가 올라간 정신적 높이에 니체 역시 어느 정도 올라갔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님의 의견이나 저의 의견이나 별다른 이견이 성립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많은 발전 있기를 빕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예. 조호영 님 말씀대로 니체는 독일 낭만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요. 단적으로, &laquo;비극의 탄생&raquo;의 주요 사상이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권 아래에서 쓰여졌다는 점을 부인할 학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니체의 초기/중기/후기의 사상적 분위기를 각각 낭만주의/계몽주의/낭만주의로 규정하기도 하지요. 저는 이 규정에서 초기의 낭만주의에는 동의하는데 후기의 낭만주의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p>
<p>그리고 독일 낭만주의가 엑카르트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지적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저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엑카르트와 독일 낭만주의는 언어는 비슷해도 그들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고 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후기의 니체와 독일 낭만주의 사이에도 그만한 간격이 있다고 봅니다. &laquo;비극의 탄생&raquo; 중 [자기비판의 시도] 7절에서 &#8220;아니, [니체] 씨, 당신의 책이 낭만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낭만주의입니까?&#8221; 하는 질문이 나오지요? 저는 이 대목이 상당히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후기 저서는 그 언어적 형태로 보자면 누구나 낭만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실상 니체는 단호하게 낭만주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p>
<p>그리고 다시, 신비주의의 문제인데, 사실 제 사고에서는 엑카르트의 신비주의나 불교의 신비주의나 별다르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니체를 불교적 신비주의라고 하든 엑카르트적 신비주의라고 하든 저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어떤 언어적 형태를 취하든 어느 한 정신적 고원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으로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니체의 사상이 신비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도 상관없고, 또 그 판단도 맞다고 봅니다. 다만, 그런 신비주의가 올라간 정신적 높이에 니체 역시 어느 정도 올라갔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님의 의견이나 저의 의견이나 별다른 이견이 성립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많은 발전 있기를 빕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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